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에 새로운 도전을 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관람했다.
대한민국의 대다수 국민이 수십 년 전부터 살아가고 있는 주택은 아파트이다. 영화 도입 부분에 우리나라에 아파트라는 건물이 처음 들어설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흑백으로 나오면서 우리 관객들에게 아파트가 주거의 의미보다 부를 축척하는 의미를 먼저 던져 준다.
1. 등장인물
이병헌배우가 맡은 영탁역은 진짜 카리스마로 주변을 압도하며, 위기 상황에서 리더는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보여 준다. 이 영화의 원작이 웹툰인줄 모르고 영화를 그냥 봤기에 30년 연기 내공을 내뿜는 이병헌배우의 영탁 역은 그냥 그 배우 자체로 딱 찍혀서 나왔다. 살기 위해 한가정의 가장의 무게로 안 해본 사업과 직업이 없을 정도로 몸부름 치며 여기까지 살아온 그. 아파트 사기를 맞고 다시 위기에 몰린 가정을 보게 된다. 울분과 부화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그가 사기꾼을 잡기 위해 쫓아온 곳은 바로 황궁 아파트. 사기꾼을 대면하지만 몸싸움 끝에 사기꾼을 죽이게 되고, 그 순간 서울에 대지진이 발생하게 된다. 이 대지진에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은 황궁 아파트. 죽은 사기꾼의 집 903호 주인으로 행세하게 된다. 거지 같은 그의 인생이 리셋된 그 순간. 아파트 대표로 뽑히게 되면서 그는 새롭게 태어난다. 힘들일도 마다 하지 않고, 아파트와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모든 궂은일을 다하면서 광기로 사람들을 죽이는 일까지 정정당당하게 해치운다. 대사를 많이 한다고 연기가 스며드는 것이 아니다. 이병헌 배우의 눈빛과 시선, 소름 끼치는 미소, 매 순간 손짓등.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가 영탁이라고 큰소리치는 그의 당당함을 뻔뻔함이 아니라고 우리 관객들은 인정해 줄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끝내 목숨까지 내놓게 되지만, 자신의 아내와 딸이 지진으로 죽었을 때 이미 그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황궁아파트 대표로 마지막까지 살다가 숨을 거둔 그의 뒷모습은 누구나 영탁이 될 수도 있고, 또 그를 도저히 미워할 수도 없고, 그를 연민할 수밖에 없는 우리 관객들은 숨 죽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이병헌배우가 또 다른 트로피를 수상하리라 믿는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1000만 관객을 동원한다면 절반은 이병헌 배우의 연기를 보러온 것일거다.
공무원이자 새신랑 민성역에는 박서준 배우가 맡았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삶을 살아가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를 꿈꿔왔던 민성. 황궁아파트를 대출로 겨우 자가로 구입했다.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 정의롭지 못한 일도 기꺼이 감수하면 아파트 대표 영탁의 오른팔이 된다. 아파트 밖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에도 가담하고, 아파트 내부에서 일어나는 지저분한 일도 앞장서서 과거의 자신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 간다.
박보영배우는 간호사 명화역을 맡았다. 남을 돕는 일이 그냥 본능인 그녀. 모든 사람들을 살려주고 싶어 하는 측은지심 마음이 강한 그녀. 황궁아파트 주민 이외의 다른 외부인들도 모두 살리려고 하지만, 어려움이 크다. 아파트 새로운 주민대표인 영탁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다가 우연히 그의 비밀을 알게 된다. 끝가지 주민대표인 영탁의 비밀을 파헤쳐서 다른 사람들에게 폭로하게 된다. 그래서 그녀가 끝내 얻은 행복은 없다. 그냥 살아남은 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김선영배우의 변신은 이제 놀라움이 아니다. 경이로운 배우로 거듭나는 것 같다. 개그맨출신으로 여러 영화의 크고 작은 조연역을 맡아왔다. 그런 그녀가 이번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 우리들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부녀회장역을 맡았다. 영탁을 도와 황궁아파트를 유토피아로 만들기 위해 가장 노력했던 그녀. 끝내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오열하는 그녀의 모습은 모든 엄마들의 모습이다.
2. 감독
엄태화 감독이 콘크리트 유토피아 감독과 각본을 맡았다. 몇 년전 '가려진 시간'이라는 작품을 통해 엄태화감독을 알게 되었다. 그가 그리는 세계관을 어느 정도 이해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통해서는 엄감독의 더 크고 깊은 세계관이 큰 울림이 있었다. 지진이라는 자연재해 앞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사투를 그리는 동서양의 여러 기존의 작품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더 와닿은 커다란 울림과 메시지가 있다. 웹툰 원작을 본 적이 없어서 엄태화감독이 원작보다 더 자세히 그리고 더 치밀하게 이 작품을 그렸는지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통해 엄감독이 충무로에 확실한 자리를 잡는 감독이 되리라는 확신은 있다. 엄태화 감독이 엄태구배우의 형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영화를 보면서 엄태구배우가 잠깐 까메오로 출연하나보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끝나고 작품에 대해 검색을 하다가 두사람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형제라도 얼굴도 상당히 많이 닮았있다. 10년 후 쯤 두 형제가 우리 한국영화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1000만 관객도 동원하는 영화도 많이 만들어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제시해 주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엄태화감독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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